양자컴퓨팅 개발 열쇠 ‘단일원자 핵스핀’ 측정 세계 첫 성공
IBS, 핵스핀-전자스핀 상호작용도 원자단위서 관측
“양자메모리 넘어 혁명적인 성과로 이어질 것”
한미 공동 연구진이 이전까지 관찰할 수 없었던 원자 하나의 전자기적 특성을 정밀하게 관찰하고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. 원자 하나로 양자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양자메모리를 비롯해 양자컴퓨팅에 필요한 여러 전자소자를 원하는대로 설계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생긴 셈이다.
안드레아스 하인리히 기초과학연구원(IBS) 양자나노과학연구단장(이화여대 물리학과 석좌교수) 연구팀은 미국 IBM 알마덴연구소와 공동으로 고체 표면 위에 놓인 티타늄(Ti), 철(Fe) 등 단일 원자의 핵스핀을 측정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고 18일 밝혔다. 이를 바탕으로 원자의 전자기적 특성을 결정하는 핵스핀과 전자스핀 간의 미세한 상호작용을 정밀 관측하는 데도 성공했다.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‘사이언스’ 19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.
스핀은 원자의 핵 또는 전자가 자전하면서 생기는 각운동량 단위로, 위(↑)나 아래(↓)의 방향성을 갖는다. 논문의 제1저자인 필립 윌케 IBS 연구위원(이화여대 박사후연구원)은 18일 서울 이화여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“특히 핵스핀은 자성을 띤 원자의 중심에서 회전하는 작은 막대자석에 비유할 수 있다”고 설명했다.
이어 그는 “수백 억 개 원자들의 핵스핀이 만들어내는 신호를 측정해 한 장의 이미지를 얻는 자기공명영상(MRI)이 핵스핀을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”라며 “하지만 핵스핀이 내는 에너지가 너무 작아 이전까지는 핵스핀을 원자 단위에서 측정하진 못했다”고 말했다. 최소 100만 개의 원자가 모여야만 유의미한 신호를 감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.
연구진은 원자 하나의 핵스핀을 측정하기 위해 주사터널현미경(STM) 기술에 연구진이 독자 개발한 전자스핀공명(ESR) 측정기술을 결합했다. STM은 매우 뾰족한 금속 탐침을 이용해 표면의 형상을 원자 단위로 관찰할 수 있는 기술이다. ESR은 스핀의 방향이 위(↑) 또는 아래(↓)로 바뀌는 과정에서 방출되는 에너지 크기를 측정해 원자 내부의 상태를 파악하는 기술이다. 하인리히 단장은 “STM은 공간 분해능이 좋고, ESR은 에너지 분해능이 좋다”며 “두 가지 기술이 가진 서로 다른 장점을 결합하면, 한 원자의 에너지를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”고 말했다.
측정 원리는 이렇다. 연구진은 영하 271.95도의 극저온, 초저진공 환경에서 산화마그네슘(MgO) 기판 위에 원자를 올린 뒤 원자 하나 위에 STM 탐침을 고정시키고 고주파를 가했다. 이때 에너지가 높아진 원자의 핵스핀은 위(↑)를 향한다.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에너지가 손실되면서 핵스핀의 방향이 다시 아래(↓)로 바뀌는데, 연구진은 이 과정에서 원자를 통과하는 전류의 세기(양)가 달라진다는 사실에 주목했다. ESR로 이 전류의 세기를 측정해 티타늄 원자 하나의 핵스핀 값을 역추산한 것이다.
연구진의 핵스핀 측정 기술을 활용하면 원자 단위로 동위원소를 구별하는 것도 가능하다. 예를 들어, 철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4가지 동위원소 중 철-57 원자만 핵스핀을 갖는다. 철-57 원자의 경우 핵스핀 방향이 각각 위(↑)와 아래(↓)인 2가지 에너지(양자) 상태로 존재한다. 티타늄-47과 티타늄-49는 각각 6가지, 8가지 양자 상태가 있다. 연구진은 STM 탐침을 이용해 표면 위 원자의 위치를 바꿔가면서 원자들 간의 상대적 위치 변화에 따라 원자의 스핀 특성이 달라진다는 점도 확인했다.
이번 연구는 물질의 자성을 원자 단위에서 연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. 새로운 양자컴퓨팅 전자소자를 개발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. 앞서 지난해 연구진은 전자스핀의 두 가지 상태를 이용해 0과 1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홀뮴(Ho) 원자 하나로 1비트의 디지털 정보를 읽고 쓰는 데 성공한 바 있다. 윌케 연구위원은 “핵스핀은 전자스핀보다 수명이 길기 때문에 더 안정적으로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”며 “0과 1은 물론 두 상태가 중첩된 상태까지 다룰 수 있는 양자정보 처리장치를 개발하는 단초가 될 것”이라고 강조했다.
다만 하인리히 단장은 “우리가 얻은 기초연구 성과는 단순히 양자메모리 구현을 위한 기술이 아니다”라고 말했다. 이어 그는 “핵스핀이라는, 기존에는 접근할 수 없었던 특성을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길을 열었기 때문에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혁명적인 성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”며 “원자의 전자구조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집중할 계획”이라고 밝혔다.
하인리히 단장은 “눈에 보이지 않는 양자 세계를 표현한 영화 ‘앤트맨과 와스프’ 등을 통해 최근 양자 세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매우 높아진 것 같다”고 말했다. 그는 “수많은 전자장비가 들어 있는 휴대폰을 오래 사용하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, 이 역시 양자효과 때문”이라며 “우리 연구단은 이런 양자효과를 필요에 따라 역으로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”고 소개했다.
출처) 동아사시언스
http://dongascience.donga.com/news.php?idx=24549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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